세상에서 가장 자유로운 도시, 암스테르담

러셀 쇼토 지음 | 허형은 옮김
발행일 2016.3.5
ISBN 9791159310492
사양 면수 568쪽 | 크기 148x210mm
가격 23000원
분류 인문.사회

책 소개

암스테르담에서는 ‘카페’와 ‘커피숍’이 전혀 다른 곳이다. 카페가 가벼운 식사와 음료를 파는 곳인 반면, 커피숍에서는 커피와 함께 마리화나와 해시시도 구매할 수 있다. 네덜란드에서 중독성이 약한 마약류를 거래하는 것은 엄밀히 말해 불법이지만 커피숍 내에서는 공식적으로 용인된다. 이와 같이 ‘불법이지만 공식적으로 눈감아주는 것’을 네덜란드에서는 ‘헤도헌(gedogen)’이라고 하는데, 여기에는 ‘어차피 일어날 일이라면 금지하지 말고 통제하는 게 낫다’는 논리가 깔려 있다. 마찬가지 논리로, 세계에서 유일하게 성매매가 합법인 암스테르담에서는 정부의 허가를 받아 성매매업에 종사하는 여성이 연간 약 5천에서 7천5백여 명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된다. 2010년에 개정되긴 했지만, 1971년에는 1년 이상 건물이 비어 있을 경우 아무나 무단으로 들어가 거주할 수 있는 법이 통과되기도 했다. 동성 커플 네 쌍이 세계 최초로 결혼식을 올린 곳도 바로 이곳, 암스테르담이었다.

2008년부터 2013년까지 암스테르담에 있는 ‘존애덤스연구소(John Adams Institute)’의 소장으로 일하면서 암스테르담에 깊이 매료된 미국의 역사학자이자 저널리스트인 러셀 쇼토는 이 책 《세상에서 가장 자유로운 도시, 암스테르담》을 통해, 도시 곳곳을 누비면서 직접 수집한 역사적인 사건들과 이야기를 도시 풍경과 함께 경쾌한 문장으로 전한다. 암스테르담의 전 시장 요프 코헌, 안네 프랑크와 어린 시절 함께 뛰놀았고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끌려가 죽음의 문턱에까지 이르렀던 프리다 멘코, 1960년대에 ‘프로보운동’을 이끌었던 룰 판 다윈 등 역사의 산 증인들과 나눈 인터뷰 내용들은 이 도시에서 화려하게 피어난 ‘자유’와 ‘관용’의 역사를 생생하게 구체화한다.

러셀 쇼토는 이 책에서, 유럽 변방의 암스테르담이 주민들의 협동을 통해 늪지와 갯벌을 개간해 도시를 건설했던 1100년경부터, 동인도회사와 서인도회사를 세워 동남아시아에 식민지를 건설한 17세기 황금기를 거쳐, 2차 세계대전 이후 대항문화운동의 중심지로 부상하며 세상에서 가장 개방적인 도시가 되기까지 근 천 년의 역사를 다룬다. 암스테르담은 또한, 근대 철학과 신학, 정치사상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친 스피노자가 그 혁신적인 사상을 탄생시킨 무대이기도 하며, 렘브란트가 종교화에서 탈피하여 캔버스 위에 ‘근대적 개인’을 표현한 곳이기도 하다.

과거와 현재를 종횡무진 넘나드는 필력으로 한 도시의 역사를 재구성한 이 책은 암스테르담이라는 작은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통해 유럽 전체의 역사는 물론이고 자유주의 사상의 흐름까지 폭넓게 조망하는 독서의 즐거움을 선사할 것이다. 또한 난민 문제와 이주 노동자 문제로 전 세계가 몸살을 앓고 있는 오늘의 현실에서 이 책은, 오래전부터 다문화 사회를 이루고 살아온 암스테르담이 겪은 시행착오를 통해 지금 우리에게 적합한 다문화 정책에 대해 고민할 수 있는 실마리를 던져준다.

“조물주가 세상을 창조했다면,
네덜란드인들은 직접 네덜란드를 만들었다”

유럽 다른 국가에서는 귀족이나 교회 아니면 귀족과 교회가 함께 땅을 소유하고 관리한 반면, 1500년경의 홀란트에서는 단 5퍼센트의 땅만 귀족이 소유했고 농민 소유의 땅이 무려 45퍼센트에 달했다. (…) 당시 평범한 네덜란드인들은 다른 나라의 농노나 소작농들이 어쩔 수 없이 취한 순종적인 자세를 취할 마음이 성향적으로 덜했을 것이다. 영주에게 충성을 맹세하는 대신, 사람들은 서로에게 지대를 지불하거나 부동산을 사고팔았다. (…) 사람은 살면서 누구나 다른 누군가를 섬겨야 하지만, 16세기의 네덜란드인들은 놀라울 정도로 자신들 외에 누구도 섬기지 않았다. (75쪽)

인류의 정착을 극도로 어렵게 만든 척박한 환경 탓에 암스테르담은 기원후 1100년경에 농부 수백 명이 해안에 흙으로 제방을 쌓기 시작하면서 비로소 도시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대부분의 땅이 주인 없는 바다나 늪지를 개간한 땅이었기에 교회도 귀족도 그 땅에 대해 선뜻 소유권을 주장하기 어려웠다. 그것은 주민 공동체가 만들어낸 땅이었다.

바로 이것, 즉 바닷물과 그로 인해 발생하는 위험, 그에 맞서는 주민들의 용기, 아무리 봐도 황당하기 짝이 없는 지리 환경, 그리고 이런 상황에 적응해 살아가기 위해 생겨난 지역공동체 조직들이 암스테르담 역사의 많은 부분을 설명해주며, 더불어 암스테르담에서 자유주의가 발전하게 된 배경이 되었다.
인류가 중세에서, 그리고 교회와 군주가 허락하는 논리의 범위에서만 지식과 권력을 행사하던 철학에서 탈피하도록 이끈 자유주의 사상은 ‘나’ 한 사람의 자유와 권리만이 아니라 모든 인간의 자유와 권리를 위한 헌신을 밑바탕으로 한다. 오랫동안 바닷물과 싸우면서 공동의 이익을 위해 제방을 쌓고 수로를 파내며 주민들이 서로 힘을 합했던 암스테르담의 전통은 인간을 보는, 그리고 인간이 서로 혹은 국가와 관계를 맺는 방식을 보는 새로운 시각을 싹틔웠다. 저자 러셀 쇼토는 지리적, 사회적 조건들 덕분에 서로 협동할 수밖에 없었던 주민들이 서로 다름을 인정해주는, ‘다양성’을 찬양하고 ‘참아주는’ 방식의 정책을 발전시킴으로써 근대 초기 종교개혁과 과학적 실험의 유행, ‘개인의 해방’을 이루어내고 자유주의의 온상이 되어간 암스테르담의 역사를 개괄한다. 그 속에서 발전한 암스테르담의 자유주의는 민주주의와도 밀접한 관계가 있고 사유재산을 가질 권리 등 경제적인 의미도 내포한 다채로운 색채를 띠고 있다.

네덜란드가 낳은 세계적 위인들

근세 유럽에서 그 어느 지역보다 빨리 자유주의가 꽃피었던 암스테르담은 혁신적인 사상가들을 배출해냈으며 유럽 각지의 사상가들도 자석처럼 끌어들였다. 《우신예찬》으로 유명한 기독교 성직자이자 인문학자였던 에라스뮈스는 네덜란드 로테르담 출신이었다. 그는 가톨릭교회의 부패상과 신앙생활의 함정을 비판했고, 기독교적 신앙심이 성찬식이나 바티칸의 권력에서가 아닌, 심지어 교황에게서도 아닌 평범한 신도들에게서, 즉 신도들이 성경을 공부하고 그 내용을 아는 데서 나와야 한다고 주장하는 기독교 인문주의를 주창했다. 그가 가톨릭교회에 대해 이토록 비판적인 정신을 갖게 된 데에는, 당시 수많은 가톨릭 신자들이 순례를 오는 ‘성스러운 도시’였던 암스테르담의 수도원에서 학대받으며 보낸 소년기의 경험이 한몫했던 것도 사실이다.

스스로 공부하는, 정직하고 개인적인 신앙 접근을 강조한 에라스뮈스의 기독교 인문주의는 암스테르담을 비롯한 네덜란드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네덜란드인들은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도 실용적이고 허튼 짓을 용납하지 않는 민족이었다. 그들은 인간의 타고난 이성을 사용할 것을 강조하는 에라스뮈스의 주장에 크게 공감했다. 그리고 종교개혁의 불길이 와 닿자 일제히 일어나 그들의 삶과 사회의 근간이 되어온 신앙의 독재에 저항하고 다른 종교를 수용하는 ‘종교적 관용’을 발전시켰다.

베네딕투스 데 스피노자

16세기에 에스파냐의 가톨릭교회로부터 강제로 쫓겨나 암스테르담에서 나름의 정체성을 찾아가던 유대인 공동체 안에서 태어난 스피노자는, ‘자유’란 무엇인지, 어떻게 하면 모든 인간이 자유로워질 수 있는지 연구하는 것을 업으로 삼은 최초의, 그리고 어쩌면 가장 위대한 자유주의 사상가였다. 그는 이성에 기초한 근대적인 ‘민주주의’를 꿈꾸며 유대교에서 파문당하면서까지 ‘개인의 자유’를 우위에 둔 혁신적인 철학 사상을 확립했고, 자신의 시대를 ‘근대’로 만드는 데 일조했다.

존 로크

이런 스피노자의 사상 또한 오직 17세기 후반의 암스테르담에서만, 즉 이 도시가 관용의 원칙을 온전히 정립하고 교회의 권력보다 비종교적 권력을 우위에 두고 최초로 진정한 근대적 자유무역 문화라 할 수 있는 것을 마련한 후에야 비로소 도래할 수 있었다. 스피노자는 당시 커피숍과 서점에서 벌어진 열띤 철학 논쟁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었고, 공개 해부학 강의나 범선들이 세계 곳곳을 향해 암스테르담의 항구를 떠나 줄지어 출발하는 광경에, 그리고 민중 대표라는 개념에 매료되었다. 이 모든 것, 암스테르담의 비옥하고 영양가 풍부했던 전성기의 열매들이 끓을 만큼 끓고 농축되어 그 정수가 증류된 것이 스피노자의 철학이었다.

근대 정치사상의 틀을 확립한 영국 철학자 존 로크는 제임스 2세의 암살 음모에 연루되어 암스테르담에 망명해 있는 동안 첨단의 출판 문화와 네덜란드 사상가들의 영향을 받았고, 관용과 인식론 그리고 민주주의 정부를 주제로 각각 《관용에 관한 편지》, 《인간지성론》, 그리고 《통치론》을 집필했다. 인간 개인의 기본 가치라는 보편적 관념에서 출발한 이 세 저서는 훗날 계몽주의의 대표 저술로 꼽히게 되었고, 그로 인해 네덜란드식 관용은 인류 전체의 역사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과 함께 찾아온 자유주의의 위기

《세상에서 가장 자유로운 도시, 암스테르담》은 저자 러셀 쇼토가 자전거에 아들을 태우고 동네를 한바퀴 돈 다음 보모에게 아들을 맡기고 ‘프리다 멘코’라는 연세 지긋한 유대인 할머니를 찾아가는 일화로 시작된다. 그리고 책의 마지막은 쇼토가 아들과 함께 그녀를 찾아가 인터뷰하는 장면으로 끝맺는다. 프리다 멘코는 2차대전 중에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끌려갔다가 기적적으로 살아 돌아온 유대인 여성이다. 수용소로 끌려갈 당시 그녀는 열여섯 살이었고, 《안네의 일기》로 우리에게 익숙한 유대인 소녀 안네 프랑크와는 한동네에서 줄넘기를 하던 친구였다. 러셀 쇼토는 프리다를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나며 6개월간 인터뷰를 하는데, 그녀가 쇼토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들은 나치 점령기의 암스테르담의 맨 얼굴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2차대전 당시, 자유주의의 고향인 네덜란드에서 유대인들은 유럽 어느 나라보다 현저히 낮은 생존율을 기록했다. 프랑스에서는 유대인의 75퍼센트가 나치 박해를 견디고 살아남은 반면, 네덜란드 유대인은 단 27퍼센트만이 살아남았다고 전해진다. 이는 전쟁이 발발하기 수십 년 전에 네덜란드가 도입한 ‘페르자윌링(verzuiling)’이라는 시스템 탓이었다. 종교에도 이념에도 관용 정신을 발휘하던 네덜란드가 사회 평화를 위해 가톨릭 집단과 개신교 집단, 사회주의 집단, 자유주의 집단으로 주민을 구분해 그들만의 분리된 공간을 배정하는 정책을 시도한 것이 페르자윌링이었다. 이 시스템 덕분에 나치는 유대인들의 소재를 쉽게 파악할 수 있었고, 체계적으로 학살을 자행하게 된다.

또한 프리다의 기억과 안네의 일기는 네덜란드인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가족을, 또는 친구를 고발하거나 나치를 도운 사례를 구체적으로 보여줌으로써 암스테르담의 관용 정신이 전쟁 중에는 오직 선택적으로만 발휘되었다는 사실을 폭로한다. 위대한 자유주의 유산이 전쟁 중에는 무너졌던 것이다. 2차대전은 암스테르담의 자유주의가 맞이한 가장 치명적이고 비극적인 위기였다.

암스테르담, 다시 자유주의의 수도로 부활하다

2차대전 직후 네덜란드인들은 뼈아픈 반성의 시간을 가졌고, 개인의 자유를 확장시키기 위한 노력을 그 어느 때보다 적극적으로 이행했다. 1946년, 암스테르담에서는 세계 최초의 동성애자 인권 단체인 ‘셰익스피어 클럽’이 만들어졌고, 로버르트 야스퍼르 흐로트벨트라는 예술가는 레이체 광장에서 금연을 주제로 행위예술을 벌였다. 룰 판 다윈은 ‘프로보운동(provo)’을 전개하며 1960년대 암스테르담의 대항문화를 선도했다. 판 다윈의 잡지 〈프로보〉가 추진한 것 가운데 일련의 ‘흰색 프로젝트’가 유명한데, 그중 가장 잘 알려진 것은 ‘하얀 자전거 프로젝트’로, 암스테르담 시 곳곳에 하얀 자전거를 비치해 시민들이 무료로 이용할 수 있도록 한 것이었다.

암스테르담에서 20세기 말에 자유주의는 다시 찬란한 꽃을 피웠다. 바닷물과 싸웠던 독특한 역사에서 출발한 암스테르담은 1960년대의 대항문화운동을 거치며 ‘새로운 황금기’를 맞이해 자유주의의 수도로 다시금 되살아났다. 현재 암스테르담은 인권과 자유에 관해서 다른 어떤 나라보다도 진보적이고 개방적인 도시다. 커피숍에서 이루어지는 마리화나 거래, 성매매 합법화, 동성 결혼과 안락사, 다양한 민족의 이민 등은 사회적으로 복잡한 문제를 일으키기도 하지만, ‘자유’를 궁극의 가치로 추구하는 이상, 암스테르담은 그들의 유산을 지켜나가기 위한 노력을 계속해서 경주해나갈 것이다.

▶▷ 이 책에 쏟아진 찬사

“놀라운 통찰을 담고 있는 역사인문서. 저자는 주민들이 몇 세대에 걸쳐 피땀 흘려 바다와 싸워 간척지를 얻어내고 암스테르담이라는 도시를 완성해낸 과정을 노련한 장인의 솜씨로 독자들에게 그려 보인다. 그리고 그 도시가 자유와 관용을 미끼로 유럽 전역에서 가장 의욕 넘치는 인재들을 끌어들여 자유로운 시민사회, 활발한 경제활동이 이루어지는 사회를 건설하고 또 한 세기 뒤에는 미국 건국의 모델이 된 과정까지 생생하게 전달하고 있다.” 〈월 스트리트 저널>

“몇 장 넘기지 않았는데도 범상치 않음을 말해주는 책들이 있다. 말로는 설명하기 힘든 그 느낌이 이 책의 첫 장을 펼쳤을 때부터 느껴졌다. 좋게 말해 이상하고 심할 경우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을 법한 신념과 사상들에 대해 암스테르담 주민들이 보여준 급진적이고 관용적인 태도에 관한 흥미로운 이야기.” 〈퍼블리셔스 위클리〉

“독특한 시각의 역사인문서. 독자를 깜짝 놀라게 하면서도 술술 재미있게 읽힌다는 건 역사인문서로서는 최고의 책이라는 말이다.” 〈허핑턴 포스트〉

“쇼토는 뛰어난 이야기꾼이자, 아무도 모를 역사적 사실을 캐내는 데 으뜸가는 수집꾼이다. 이 책은 암스테르담을 방문하는 모든 여행객의 필독서가 되어야 마땅하다.” 〈가디언〉

“러셀 쇼토는 암스테르담을 사랑하고, 나는 이 책을 사랑한다.”  _전 암스테르담 시장 요프 코헌

차례

1부
1. 자전거 타고 동네 한 바퀴 •11
2. 바다와 싸우는 사람들 •40
3. 대변혁 •84

2부
4. 동인도회사 •151
5. 자유주의가 꽃피다 •209
6. 공화국에 사는 흔치 않은 행복 •264

3부
7. 전 세계에 변화의 씨앗을 퍼뜨리다 •311
8. 경제자유주의와 사회자유주의의 공존 •367
9. 나치 독일의 침공과 두 유대인 소녀 •427
10. 마법이 일어나는 곳 •466

후기 •521 | 감사의 말 •525 | 후주 •529 | 참고문헌 •541 | 찾아보기 •555

지은이 러셀 쇼토 Russell Shorto
1959년에 미국 펜실베이니아에서 태어났다. 1981년에 조지 워싱턴 대학을 졸업하고, 역사학자이자 저널리스트, 저술가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 《세계의 중심이 된 섬The Island at the Center of the World》, 《종교적 광기와 정신 이상의 경계Saints and Madmen》, 《인간 예수를 찾아서Gospel Truth》, 그리고 2013년에 한국에 번역되어 소개된 《데카르트의 사라진 유골Descartes’ Bones》이 있다. 2008년부터 2013년까지 암스테르담에 있는 ‘존애덤스연구소John Adams Institute’의 소장으로 일하는 동안 현지인들 및 지식인들과 인터뷰를 진행하며 이 책을 집필했다.

옮긴이 허형은
숙명여자대학교 한국사학과를 졸업하고 현재 전문 번역가로 일하고 있다. 《나를 대단하다고 하지 마라》, 《잃어버린 고양이를 찾아서》, 《빅스톤갭의 작은 책방》, 《엄마의 마음공부》, 《생추어리 농장》, 《삶은 문제 해결의 연속이다》, 《맛있는 글쓰기의 길잡이》,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61 : 빛나는 청산가리》, 《모리스의 월요일》, 《범죄의 해부학》, 《모란의 사랑》 등을 우리말로 옮겼다.

작가 소개

러셀 쇼토 지음

허형은 옮김

숙명여자대학교 한국사학과를 졸업하고 현재 전문 번역가로 활동중이다. 옮긴 책으로 《모리스의 월요일》《생추어리 농장》《빅스톤갭의 작은 책방》《잃어버린 고양이를 찾아서》《나를 대단하다고 하지 마라》《범죄의 해부학》《맛있는 글쓰기의 길잡이》《세상에서 가장 자유로운 도시, 암스테르담》《삶의 끝에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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